NBA 최초의 흑인 슈퍼스타 빌 러셀, 88세로 사망…73~74년까지 시애틀 수퍼 소닉스 감독 맡기도
‘NBA 11회 최다우승’ …44년 동안 명예의 전당 입성을 거부하기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NBA의 전설 빌 러셀에게 2010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AP통신)

▲셀틱스의 전설 빌 러셀이 2013년 11월에 헌정하는 동안 TD 가든 관중들을 올려다보고 있다.(AP통신)
NBA 최초의 흑인 슈퍼스타 빌 러셀, 88세로 사망…73~74년까지 시애틀 수퍼 소닉스 감독 맡기도
‘NBA 11회 최다우승’ …44년 동안 명예의 전당 입성을 거부하기도
전무후무한 통산 11번의 우승, 역대 최고의 팀 플레이어
흑인 인권 위해 노력…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유 훈장 수여
NBA는 애도의 물결…실버 총재 "평등과 존중의 상징"
NBA(미 남자프로농구) 최다우승에 빛나는 전설 빌 러셀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7월31일(현지시간) 숨을 거뒀다. 그는 1973년부터 1977년까지 지금은 없어진 시애틀 슈퍼 소식스(Seattle SuperSonics)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5번의 NBA 정규리그 MVP 등극, 12번의 NBA 올스타 선정, 미국 대학농구(NCAA) 우승과 하계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NBA 우승을 모두 경험한 선수. 독보적인 NBA 최다인 무려 11번의 NBA 우승을 차지했던 레전드.
빌 러셀의 유족들은 7월31일(현지시각/ 한국 시각 1일) 러셀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러셀이 평화롭게 아내 자닌 곁에서 눈을 감았다. 조만간 추모식에 대한 공지가 있을 예정이다. 러셀의 아내와 가족들은 당신들의 깊은 애도에 감사를 보낸다”고 알렸다.

▲빌 러셀(왼쪽)과 K.C. 존스는 USF가 두 개의 NCAA 타이틀을 우승할 때 동료였다. 그들은 보스턴 셀틱스와 함께 8개의 NBA 타이틀을 거머쥐며 스타가 되었다.(AP통신)
1934년생인 빌 러셀은 1956년 NBA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현 애틀랜타 호크스)에 지명돼 곧바로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한 게임에서 100득점을 올린 것으로 유명한 윌트 채임벌린과 함께 세기의 센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그는 당당한 체격(208cm, 98kg)으로 농구 코트를 누비며 보스턴 셀틱스 선수시절 NBA 챔피언십에서 무려 11회(1957, 1959~1966, 1968, 1969) 우승하는 등 개인최다우승 기록을 달성했다. 정규리그 MVP에는 5차례(1958, 1961~1963, 1965) 오르고, 올스타 12회(1958~1969)에 선정된 그는 NBA를 대표하는 전설이었다.

▲1962년 4월, 셀틱스의 센터 빌 러셀이 레이커스의 센터 짐 크렙스를 상대로 훅 슛을 시도하고 있다.(AP통신)
러셀은 플레잉코치(경기에 정식 선수로 나서면서, 소속 팀 선수를 지도하는 일을 병행하는 사람)로 그의 두 마지막 NBA 챔피언십(1968, 1969)에서 우승한 독특한 경력도 갖고 있다. NBA는 2009년에 러셀의 업적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NBA 파이널 MVP 트로피를 ‘빌 러셀 트로피’로 명명했다. 또 러셀은 농구 명예의 전당에 각각 선수(1975)와 감독(2021)으로 모두 헌액된 바 있다.
1950~1960년대 NBA 무대를 주름 잡았던 전설적인 센터 빌 러셀은 1975년 미국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흑인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흑인 선수에게는 높은 벽과도 같았지만 빌 러셀의 경력을 돌아보면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빌 러셀이 1966년 4월 18일 보스턴 셀틱스의 새 사령탑으로자신의 소개 기자 회견 동안 미소짓고 있다.(AP)
그런데 빌 러셀은 명예의 전당 기념 반지를 받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 측에서 준비한 기념 반지 수령을 거부했다. 그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빌 러셀이 지난 2019년 SNS를 통해 직접 그 이유를 밝히기 전까지는 누구도 몰랐다.
빌 러셀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발표된 지 무려 44년이 지난, 왜 하필 2019년이었을까. 2019년은 NBA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 농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해다.
미국에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지난 1950년 흑인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NBA 드래프트의 벽을 뚫고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은 척 쿠퍼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해다.
빌 러셀은 '흑인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라는 타이틀을 척 쿠퍼에게 양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빌 러셀은 2019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 명단이 발표된 후 자신의 SNS에 "지난 1975년, 난 최초의 흑인 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나보다 먼저 그 명예를 누려야 하는 인물이 있었다. 척 쿠퍼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모습을 보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빌 러셀과 레드 아우어바흐 감독이 1966년 4월 28일 레이커스를 95-93으로 꺾고 NBA 8연패를 달성한 뒤 자축하고 있다.(AP)
빌 러셀이 어떤 인물이고 그가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코트 안에서의 빌 러셀은 레전드 그 자체다. NBA 역사상 최고의 팀 플레이어, 가장 위대한 승자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한다. 적어도 우승과 관련한 부문에서는 그의 위상에 근접할 선수가 없다.
NBA 파이널 MVP에게 수여되는 트로피의 공식 명칭은 그의 이름을 딴 '빌 러셀 트로피'다. 빌 러셀이 직접 코트에서 수여하는 NBA 파이널 트로피의 무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레이커스의 센터 윌트 체임벌린이 1969년 포룸에서 열린 NBA 파이널 경기에서 셀틱스의 센터 빌 러셀을 상대로 득점을 시도하고 있다.(AP통신)
빌 러셀은 흑인 NBA 선수, 더 나아가 미국 사회의 흑인들의 인권과 처우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지난 2011년 그에게 자유의 훈장을 수여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에 "러셀은 코트 안에서 농구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이었고 코트 밖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시민권을 개척해나간 인물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수십 년 동안 온갖 모욕을 견뎌내면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빌 러셀의 농구와 그가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글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빌 러셀은 스포츠보다 더 위대한 싸움을 해왔고 평등과 존중의 DNA를 NBA에 심었다"고 전한 애덤 실버 NBA 총재를 비롯해 NBA 커뮤니티 전체에서 깊은 애도의 행렬이 끊이질 않고 있다.

▲맨 왼쪽의 첫 번째 줄인 빌 러셀은 1967년 클리블랜드 서밋에 참석했던 흑인 운동선수들 중 하나였다.(AP)

▲셀틱스의 센터 빌 러셀이 레이커스의 가드 제리 웨스트의 레이업 슛을 막으려 하고 있다.

▲1969년 NBA 결승전의 7번째 경기에서 셀틱스의 센터 빌 러셀은 레이커스를 상대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AP통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