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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국민 배우’ 안성기(75)의 별세 소식에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후배 정우성과 이정재가 빈소를 지키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 고(故) 안성기는 5일 오전 9시쯤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상주에는 아내 오소영씨와 두 아들이 이름을 올렸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상주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유족과 함께 조문객을 맞이했다. 검은 정장 차림에 근조 리본을 단 두 사람은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순간도 곁에서 지켜봤다. 두 사람은 고인과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서 가족처럼 함께해왔다. 9일 발인 때는 운구를 맡을 예정이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과 60여 년 지기인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강우석·이준익 감독, 배우 이덕화·박중훈·권상우·최수종·신현준·송승헌,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소설가 김홍신, 가수 태진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배우 전도연과 김상경 등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기렸다. 고인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한 박중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고 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자분과 함께 있으면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며 “선배님이 영화계에 끼친 영향 또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주신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인과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스타’(2006) 등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가수 태진아는 아들인 가수 이루의 곡 ‘까만 안경’ 뮤직비디오에 고인이 출연했던 것을 언급하며 “저에게는 친형이나 다름없었는데 돌아가셨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인의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5일장으로 결정됐다.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해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일반 시민을 위한 조문 공간도 서울영화센터에 마련된다. 6~8일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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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성실하게 연기했다. 끝의 끝까지도. 한국전쟁 상흔이 남은 땅에 배우란 직업을 알렸고, 무심히 쇼츠를 넘기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무대 위로 꺼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매체도 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縱橫無盡). 지난해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특별 연극을 선보인 그는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정의하던 ‘최고령 현역 배우’ 이순재가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91세. 데뷔 69년만이다. 25일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는 이순재가 이날 새벽 별세했다고 밝혔다. 90세 받은 상에도 눈물 흘렸다 고인은 지난 1월 드라마 ‘개소리’(2024)로 KBS 연기대상을 받으며 현역 배우의 면모를 자랑했다. 2007년 MBC 연예대상 이후 받는 첫 연기대상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그는 “60세가 되어도 잘하면 공로상이 아니라 상을 주는 것”이라며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위해 힘써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다. 이순재가 연기를 시작한 1956년은 배우라는 직업이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던 시절 올린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1961년 KBS 개국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진입한 그는 TBC 공채 1기로 발탁되며 TBC 전속 연기자 활동을 시작했고, 1966년 영화 ‘초연’으로 스크린에 나선다. 69년에 걸친 그의 활동기록은 곧 한국 대중문화예술사가 됐다. 꿈 많은 고등학생에서 ‘종횡무진’ 배우까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에서 지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라 대전에 정착했다. 호적상으로는 1935년생이다. 대전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연극 ‘햄릿’ 무대에 오르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대학 재학 중엔 연극반을 재건해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동인제 극단 ‘실험극장’을 창단하며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해오던 이순재는 1964년 TBC 창립 멤버로 합류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 일일연속극 ‘눈이 나리는데’(1964)를 시작으로, 최초의 TV 수사극 ‘형사수첩’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 입지를 다졌다. 고대하던 영화 출연의 기회도 생겼다. 1966년 정진우 감독의 ‘초연’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고, 1976년에는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최인현 감독의 영화 ‘집념’으로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연기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1980년 11월,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그가 몸담았던 TBC가 문을 닫았다. 이후 그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활동 무대를 KBS, MBC로 넓혀갔다. 대중 앞에 한 발 더 1980년대 후반에는 ‘이순재 의원’으로 대중 앞에 섰다. 문화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이 이어지던 시기, 고인은 동료 배우 이낙훈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서울 중랑구 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방송국에 저작인접권이 일임되어 있던 저작권법을 수정, 실연자인 배우의 저작인접권을 제도화하는 등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는 임기를 마친 후 ‘의원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연기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교장 선생님 박봉학 역을 맡은 MBC 일일연속극 ‘보고 또 보고’(1998~1999)와 허준의 스승 유의태 역을 연기한 MBC 사극 드라마 ‘허준’은 각각 일일연속극(57.3%)과 사극 드라마(64.8%)의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그런 그에게 ‘야동순재’라는 격 없는 별명까지 붙은 건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큰소리를 치지만 밖에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허당 할아버지 이순재를 연기했다. 몸을 사리지 않은 그의 연기는 최근까지도 각종 플랫폼을 통해 회자되며 대중에게 웃음을 안겼다. 담당의 “휴식해야” 말할 때까지 무대에 섰다 방송에서의 왕성한 활동도, 고인이 연극에 품은 애정을 이기진 못했다. 그는 ‘세일즈맨의 죽음’(2000, 2017), ‘늙은 부부의 이야기’(2005), ‘사랑별곡’(2013), ‘황금연못’(2015), ‘앙리 할아버지와 나’(2017) 등 꾸준히 연극활동을 이어갔다. 2022년엔 동시에 네 편의 연극을 소화했고, 그해 12월부턴 러시아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통해 조연(쏘린) 출연과 첫 상업 연극 연출을 병행했다. 2023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수작인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연극의 주연을 맡은 그는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난해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에스터를 1달 정도 연기하다 담당의로부터 휴식을 권고받고 하차했다. 여력이 닿는 데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달라” 연기를 향한 고인의 사랑은 후배들에게도 아낌없이 돌아갔다. 세종대에 이어 가천대에서 10년 이상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일하며 연기를 가르쳤다.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일침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꾸린 특별무대를 통해 연극 무대 오디션에 접수한 참가자가 되어 자신의 연기철학을 전했다.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라며 “연기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한 그는 특별무대에서 누구냐 묻자 출연한 드라마·영화·연극의 개수를 통해 자신을 소개했다. 이순재의 출연작은 모든 매체를 합해 약 400여편에 달한다. 당시 그는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무대 위, 카메라 앞에 남아있었던 셈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6시20분이다. 장지는 이천 에던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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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오스카상 수상 감독이자 자유주의 운동가,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독립 영화의 대부로 활약했던 할리우드의 황금기 로버트 레드포드가 16일(현지시각 화요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홍보 담당자 신디 버거는 성명을 통해 레드포드가 "유타주 산골에 있는 선댄스 극장의 자택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 스타덤에 오른 레드포드는 "The Candidate캔디데이트", "All the President’s Men대통령의 모든 사람들", "The Way We Were우리가 있었던 길" 등의 영화로 7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영화 "Ordinary People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70년대를 마무리했고, 이 영화는 1980년 작품상을 수상했다. 물결치는 금발 머리와 소년 같은 미소는 그를 가장 선망하는 주연 배우로 만들었지만, 그는 정치적 옹호, 화려하지 않은 역할에 대한 의욕, 저예산 영화에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헌신 등을 통해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부터 "Jeremiah Johnson 제레미아 존슨"의 산악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중 스파이까지 다양한 배역을 맡았으며, 제인 폰다, 메릴 스트립, 톰 크루즈 등이 그의 파트너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스크린 파트너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 운동가이자 장난꾸러기였던 폴 뉴먼이었고, 두 사람의 영화는 스크린 밖에서도 따뜻하고 장난기 어린 관계를 보여주는 변주였다. 레드포드는 1969년작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에서 뉴먼의 상대역으로 교활한 무법자를 연기했는데,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여 레드포드의 선댄스 연구소와 영화제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는 또한 1973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The Sting 스팅"에서 뉴먼과 함께 호흡을 맞춰 1930년대 시카고의 젊은 사기꾼 역을 맡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레드포드가 감독과 제작에 집중하면서 1970년대 이후 영화 출연은 점차 줄어들었고, 선댄스 연구소를 통해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독립 영화 운동의 거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1985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Out of Africa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3년에는 "All is Lost 올 이즈 로스트"에서 난파선 선원 역을 맡아 영화 속 유일한 배우로 출연하며 그의 연기 인생 중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년에는 작별 영화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The Old Man and the Gun노인과 총"에서도 다시 한번 찬사를 받았다. 그는 영화 개봉 직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매우 만족하는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고 생각합니다. 21살 때부터 시작해서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이제 80대가 되어가니 은퇴를 생각하고 아내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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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서울대 출신 배우 김혜은이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아내 설난영씨를 응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김혜은은 31일 인스타그램에 “어제오늘처럼 서울대 나온 학력이 부끄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제가 대신 죄송하단 말씀 전하고 싶다”며 글을 올렸다. 그는 “인간의 학력과 지성은 고단한 인생의 성실함으로 삶의 증거로 말하는 분들 앞에서 한 장의 습자지와도 같은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자랑”이라며 “누구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하하는 혀를 가진 자라면 그는 가장 부끄러운 혀를 가진 자”라고 했다. 이어 “여자로서 한 남자의 꿈을 위해 평생을 뒷바라지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그러면서 여성 노동운동가로 공의를 위해 몸을 던지려 노력하며 살아오신 설난영 여사와 같은 우리 어머니들을 저는 존경한다. 저는 그리 살지 못했을 것 같아 더 존경한다”고 했다. 또 그는 “남편 위해, 자식 위해 생계를 도맡으며 법카 사고 한번 없이 남편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신 설난영 여사님”이라며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진짜 롤모델”이라고 했다. 끝으로 김혜은은 “고학력자 아니고, 서울대 나왔다며 고졸 비하하는 교만하고 계급의식 절어 사는 썩은 지성인 아니다”라며 “이 시대를 사는 여성으로서 저렴한 모진 말에 정말 가슴 아픈 오늘”이라고 했다. 다만 이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김혜은의 이 글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여성·노동자·학력 비하 논란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혜은은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다. 앞서 유 전 이사장은 지난 28일 공개된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난영씨 인생에선 거의 갈 수 없는 자리”라며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문수씨는 설난영씨가 생각하기에 나하고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면서 “그런 남자와의 혼인을 통해 내가 좀 더 고양됐다고 느낄 수 있다. 험하게 살다가 국회의원 사모님이 됐죠. 남편을 더욱 우러러보겠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지자 유 전 이사장은 “표현이 거칠었던 건 제 잘못”이라며 “좀 더 점잖고 정확한 표현을 썼더라면 비난을 그렇게 많이 받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김문수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내에 대한 글을 올려 “위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저와 가족을 지킨 훌륭한 사람”이라며 “인생에서 갈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고 갈 수 없는 자리가 따로 있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김 후보는 이날 유세에 ‘제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가 하면, 유 전 이사장을 겨냥한 듯 “어떤 사람이 하는 소리가, 제 아내가 대학 안 나왔다고 (뭐라고 한다)”며 “사람의 지혜는 꼭 학벌 높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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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25)가 소셜미디어에 ‘빨간 2번 점퍼’ 사진을 올렸다가 삭제한 배경을 두고 정치적 메시지와 연관이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리나는 지난 27일 인스타그램에 꽃 이모티콘과 함께 일본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카리나가 입고 있는 점퍼엔 빨간 줄이 그려져있고, 빨간색의 숫자 2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선 카리나가 이번 대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일각에선 과거 이재명 더불어대선민주당 후보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온라인에 카리나에 대해 “한번만 먹고 싶다 진짜” 등 성희롱성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나왔던 것을 거론하며 이 때문에 카리나가 정치색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카리나는 약 2시간 만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카리나가 입은 점퍼는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창업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바케라(Vaquera)의 제품이다. ‘Vaquera’는 스페인어로 여성 카우보이를 뜻하며,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브랜드로 평판이 높다. 성별과 인종, 젠더, 계급 등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해체주의적 철학을 디자인에 담아내며, 이를 위해 지나치게 부풀린 사이즈의 셔츠처럼 의도된 비대칭 디자인이나 숫자 그래픽을 자주 활용해 저항과 풍자의 메시지를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브랜드가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까닭에 대중문화의 관습과 규범을 뒤집고자하는 여가수들이 즐겨 입기도 한다. 가수 리한나가 본인 뮤직비디오에서 이 브랜드의 오버사이즈 디자인을 입고 출연한 적이 있으며, 독특하고 젠더리스한 패션을 즐기는 가수 빌리 아일리시도 뮤직비디오와 패션 매거진 화보에서 이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카리나가 입은 이 재킷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가격은 70만~90만원대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28일 오전 기준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부분의 사이즈가 ‘품절 임박’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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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은사는 지안 스님…서울 강남구 사)일붕정법 보존위 연실원서 출가식속가(俗家) 아내 김수연 반야(般若) 보살, 합장하며 법기 스님 곁 지켜 원로 배우 김희라(78· 金熙羅, 본명 김영목金永穆)가 영욕으로 점철된 속세를 뒤로하고 불교에 귀의, 법기(法氣) 스님으로 출가했다. 강력한 눈빛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70년대 한국 은막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김희라는 23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광평로에 있는 (사)일붕정법보존위워뇌 위원장 지안 스님(일붕 서경보 법맥전수자)을 은사로 불교에 귀의했다. 정법회 연실원 금강계단(관불사)에서 아내 김수현과 아들 금성 등 속세의 가족과 100여명의 불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식으로 출가, 법기(法氣)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기 스님은 일찍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어 지내던 중 친구이자 50여년 인생의 벗이었던 지안 큰 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결심하고 불교에 귀의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불교에 귀의하여 남은 여생을 부처님 일에 수행정진하며, 속세에서 연기생활을 했을 때 응원을 보내 준 팬들과 중생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배우 김희라는 1950~1960년대 흑백 영화시대에 ‘국민 아버지’로 불렀던 배우 故 김승호(1917~1968) 선생의 외아들로, 부친 장례식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의 궈유로 연기자 제안을 받은 후 이듬해 1969년 ‘비내리는 고모령’으로 영화에 데뷔, 1970년 ‘동춘’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발점으로 인기 배우 반열에 오르면서, 500여 편의 영화에 주역으로 출연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파나마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름다운 선배영화인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1972년 TBC 특집드라마 ‘벙어리 삼룡이’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1980년 MBC 주간드라마 ‘전원일기’, 1982년 KBS1 100분 드라마 ‘반역자’ 1983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 왕조 오백년-추동궁 마마’에서 1997년 MBC 일일시트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홍경인의 아버지 홍희라 역을 맡기까지 TV 드라마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정치인 김희라’가 되고 싶었던 그는 1996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을 맡아 정계에 뛰어들었지만,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민주연합 후보 출마하였으나 낙선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희라는 2000년 7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때 미국에서 자녀들과 생활하던 아내 김수연 씨가 급거 귀국하여 병상을 지키고 정성을 다해 간병을 한 끝에 언어 장애와 휠체어에 의지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홀로 걷기에 이르렀다. 김희라는 불편한 몸으로 2010년 고 윤정희가 미자역으로 연기한 영화 ‘시(詩)’에서 간병을 받는 강 노인 역으로 ‘제47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때 그는 "제가 아직 살아있네요. 세월이 가도 어떻게 합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분의 가슴속에 계속 살아남겠다"라는 수상 소감으로 시상식장을 메운 관객의 응원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의 아내 김수연 씨는 2005년 전북과학대학 초빙교수, 2006년 동아방송대학 초빙교수로 강의 및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김희라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다. 법명이 반야(般若)인 속가의 아내 김수연 씨는 남편의 불교 귀의에 대해서 “집안이 불교 가보를 이어온지라 모든 게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독서량도 많은 분인데,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셨을 때부터 불교 관련 서적을 탐독하셨다. 그러던 중 오랜 교제를 이어오던 지안 스님의 권유로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이라며 “이제 배우 김희라를 뒤로하고 법기(法氣) 스님으로 불교에 귀의하셨으니, 중생을 위한 기도와 포교에 정진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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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 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국민 배우’ 안성기(75)의 별세 소식에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후배 정우성과 이정재가 빈소를 지키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 고(故) 안성기는 5일 오전 9시쯤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상주에는 아내 오소영씨와 두 아들이 이름을 올렸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상주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유족과 함께 조문객을 맞이했다. 검은 정장 차림에 근조 리본을 단 두 사람은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순간도 곁에서 지켜봤다. 두 사람은 고인과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서 가족처럼 함께해왔다. 9일 발인 때는 운구를 맡을 예정이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과 60여 년 지기인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강우석·이준익 감독, 배우 이덕화·박중훈·권상우·최수종·신현준·송승헌,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소설가 김홍신, 가수 태진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배우 전도연과 김상경 등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기렸다. 고인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한 박중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고 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자분과 함께 있으면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며 “선배님이 영화계에 끼친 영향 또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주신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인과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스타’(2006) 등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가수 태진아는 아들인 가수 이루의 곡 ‘까만 안경’ 뮤직비디오에 고인이 출연했던 것을 언급하며 “저에게는 친형이나 다름없었는데 돌아가셨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인의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5일장으로 결정됐다.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해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일반 시민을 위한 조문 공간도 서울영화센터에 마련된다. 6~8일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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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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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 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성실하게 연기했다. 끝의 끝까지도. 한국전쟁 상흔이 남은 땅에 배우란 직업을 알렸고, 무심히 쇼츠를 넘기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무대 위로 꺼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매체도 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縱橫無盡). 지난해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특별 연극을 선보인 그는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정의하던 ‘최고령 현역 배우’ 이순재가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91세. 데뷔 69년만이다. 25일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는 이순재가 이날 새벽 별세했다고 밝혔다. 90세 받은 상에도 눈물 흘렸다 고인은 지난 1월 드라마 ‘개소리’(2024)로 KBS 연기대상을 받으며 현역 배우의 면모를 자랑했다. 2007년 MBC 연예대상 이후 받는 첫 연기대상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그는 “60세가 되어도 잘하면 공로상이 아니라 상을 주는 것”이라며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위해 힘써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다. 이순재가 연기를 시작한 1956년은 배우라는 직업이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던 시절 올린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1961년 KBS 개국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진입한 그는 TBC 공채 1기로 발탁되며 TBC 전속 연기자 활동을 시작했고, 1966년 영화 ‘초연’으로 스크린에 나선다. 69년에 걸친 그의 활동기록은 곧 한국 대중문화예술사가 됐다. 꿈 많은 고등학생에서 ‘종횡무진’ 배우까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에서 지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라 대전에 정착했다. 호적상으로는 1935년생이다. 대전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연극 ‘햄릿’ 무대에 오르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대학 재학 중엔 연극반을 재건해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동인제 극단 ‘실험극장’을 창단하며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해오던 이순재는 1964년 TBC 창립 멤버로 합류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 일일연속극 ‘눈이 나리는데’(1964)를 시작으로, 최초의 TV 수사극 ‘형사수첩’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 입지를 다졌다. 고대하던 영화 출연의 기회도 생겼다. 1966년 정진우 감독의 ‘초연’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고, 1976년에는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최인현 감독의 영화 ‘집념’으로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연기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1980년 11월,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그가 몸담았던 TBC가 문을 닫았다. 이후 그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활동 무대를 KBS, MBC로 넓혀갔다. 대중 앞에 한 발 더 1980년대 후반에는 ‘이순재 의원’으로 대중 앞에 섰다. 문화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이 이어지던 시기, 고인은 동료 배우 이낙훈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서울 중랑구 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방송국에 저작인접권이 일임되어 있던 저작권법을 수정, 실연자인 배우의 저작인접권을 제도화하는 등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는 임기를 마친 후 ‘의원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연기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교장 선생님 박봉학 역을 맡은 MBC 일일연속극 ‘보고 또 보고’(1998~1999)와 허준의 스승 유의태 역을 연기한 MBC 사극 드라마 ‘허준’은 각각 일일연속극(57.3%)과 사극 드라마(64.8%)의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그런 그에게 ‘야동순재’라는 격 없는 별명까지 붙은 건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큰소리를 치지만 밖에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허당 할아버지 이순재를 연기했다. 몸을 사리지 않은 그의 연기는 최근까지도 각종 플랫폼을 통해 회자되며 대중에게 웃음을 안겼다. 담당의 “휴식해야” 말할 때까지 무대에 섰다 방송에서의 왕성한 활동도, 고인이 연극에 품은 애정을 이기진 못했다. 그는 ‘세일즈맨의 죽음’(2000, 2017), ‘늙은 부부의 이야기’(2005), ‘사랑별곡’(2013), ‘황금연못’(2015), ‘앙리 할아버지와 나’(2017) 등 꾸준히 연극활동을 이어갔다. 2022년엔 동시에 네 편의 연극을 소화했고, 그해 12월부턴 러시아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통해 조연(쏘린) 출연과 첫 상업 연극 연출을 병행했다. 2023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수작인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연극의 주연을 맡은 그는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난해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에스터를 1달 정도 연기하다 담당의로부터 휴식을 권고받고 하차했다. 여력이 닿는 데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달라” 연기를 향한 고인의 사랑은 후배들에게도 아낌없이 돌아갔다. 세종대에 이어 가천대에서 10년 이상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일하며 연기를 가르쳤다.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일침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꾸린 특별무대를 통해 연극 무대 오디션에 접수한 참가자가 되어 자신의 연기철학을 전했다.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라며 “연기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한 그는 특별무대에서 누구냐 묻자 출연한 드라마·영화·연극의 개수를 통해 자신을 소개했다. 이순재의 출연작은 모든 매체를 합해 약 400여편에 달한다. 당시 그는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무대 위, 카메라 앞에 남아있었던 셈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6시20분이다. 장지는 이천 에던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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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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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 [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오스카상 수상 감독이자 자유주의 운동가,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독립 영화의 대부로 활약했던 할리우드의 황금기 로버트 레드포드가 16일(현지시각 화요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홍보 담당자 신디 버거는 성명을 통해 레드포드가 "유타주 산골에 있는 선댄스 극장의 자택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 스타덤에 오른 레드포드는 "The Candidate캔디데이트", "All the President’s Men대통령의 모든 사람들", "The Way We Were우리가 있었던 길" 등의 영화로 7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영화 "Ordinary People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70년대를 마무리했고, 이 영화는 1980년 작품상을 수상했다. 물결치는 금발 머리와 소년 같은 미소는 그를 가장 선망하는 주연 배우로 만들었지만, 그는 정치적 옹호, 화려하지 않은 역할에 대한 의욕, 저예산 영화에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헌신 등을 통해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부터 "Jeremiah Johnson 제레미아 존슨"의 산악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중 스파이까지 다양한 배역을 맡았으며, 제인 폰다, 메릴 스트립, 톰 크루즈 등이 그의 파트너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스크린 파트너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 운동가이자 장난꾸러기였던 폴 뉴먼이었고, 두 사람의 영화는 스크린 밖에서도 따뜻하고 장난기 어린 관계를 보여주는 변주였다. 레드포드는 1969년작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에서 뉴먼의 상대역으로 교활한 무법자를 연기했는데,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여 레드포드의 선댄스 연구소와 영화제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는 또한 1973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The Sting 스팅"에서 뉴먼과 함께 호흡을 맞춰 1930년대 시카고의 젊은 사기꾼 역을 맡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레드포드가 감독과 제작에 집중하면서 1970년대 이후 영화 출연은 점차 줄어들었고, 선댄스 연구소를 통해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독립 영화 운동의 거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1985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Out of Africa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3년에는 "All is Lost 올 이즈 로스트"에서 난파선 선원 역을 맡아 영화 속 유일한 배우로 출연하며 그의 연기 인생 중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년에는 작별 영화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The Old Man and the Gun노인과 총"에서도 다시 한번 찬사를 받았다. 그는 영화 개봉 직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매우 만족하는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고 생각합니다. 21살 때부터 시작해서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이제 80대가 되어가니 은퇴를 생각하고 아내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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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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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 "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서울대 출신 배우 김혜은이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아내 설난영씨를 응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김혜은은 31일 인스타그램에 “어제오늘처럼 서울대 나온 학력이 부끄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제가 대신 죄송하단 말씀 전하고 싶다”며 글을 올렸다. 그는 “인간의 학력과 지성은 고단한 인생의 성실함으로 삶의 증거로 말하는 분들 앞에서 한 장의 습자지와도 같은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자랑”이라며 “누구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하하는 혀를 가진 자라면 그는 가장 부끄러운 혀를 가진 자”라고 했다. 이어 “여자로서 한 남자의 꿈을 위해 평생을 뒷바라지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그러면서 여성 노동운동가로 공의를 위해 몸을 던지려 노력하며 살아오신 설난영 여사와 같은 우리 어머니들을 저는 존경한다. 저는 그리 살지 못했을 것 같아 더 존경한다”고 했다. 또 그는 “남편 위해, 자식 위해 생계를 도맡으며 법카 사고 한번 없이 남편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신 설난영 여사님”이라며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진짜 롤모델”이라고 했다. 끝으로 김혜은은 “고학력자 아니고, 서울대 나왔다며 고졸 비하하는 교만하고 계급의식 절어 사는 썩은 지성인 아니다”라며 “이 시대를 사는 여성으로서 저렴한 모진 말에 정말 가슴 아픈 오늘”이라고 했다. 다만 이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김혜은의 이 글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여성·노동자·학력 비하 논란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혜은은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다. 앞서 유 전 이사장은 지난 28일 공개된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난영씨 인생에선 거의 갈 수 없는 자리”라며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문수씨는 설난영씨가 생각하기에 나하고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면서 “그런 남자와의 혼인을 통해 내가 좀 더 고양됐다고 느낄 수 있다. 험하게 살다가 국회의원 사모님이 됐죠. 남편을 더욱 우러러보겠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지자 유 전 이사장은 “표현이 거칠었던 건 제 잘못”이라며 “좀 더 점잖고 정확한 표현을 썼더라면 비난을 그렇게 많이 받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김문수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내에 대한 글을 올려 “위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저와 가족을 지킨 훌륭한 사람”이라며 “인생에서 갈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고 갈 수 없는 자리가 따로 있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김 후보는 이날 유세에 ‘제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가 하면, 유 전 이사장을 겨냥한 듯 “어떤 사람이 하는 소리가, 제 아내가 대학 안 나왔다고 (뭐라고 한다)”며 “사람의 지혜는 꼭 학벌 높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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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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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 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25)가 소셜미디어에 ‘빨간 2번 점퍼’ 사진을 올렸다가 삭제한 배경을 두고 정치적 메시지와 연관이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리나는 지난 27일 인스타그램에 꽃 이모티콘과 함께 일본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카리나가 입고 있는 점퍼엔 빨간 줄이 그려져있고, 빨간색의 숫자 2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선 카리나가 이번 대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일각에선 과거 이재명 더불어대선민주당 후보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온라인에 카리나에 대해 “한번만 먹고 싶다 진짜” 등 성희롱성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나왔던 것을 거론하며 이 때문에 카리나가 정치색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카리나는 약 2시간 만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카리나가 입은 점퍼는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창업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바케라(Vaquera)의 제품이다. ‘Vaquera’는 스페인어로 여성 카우보이를 뜻하며,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브랜드로 평판이 높다. 성별과 인종, 젠더, 계급 등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해체주의적 철학을 디자인에 담아내며, 이를 위해 지나치게 부풀린 사이즈의 셔츠처럼 의도된 비대칭 디자인이나 숫자 그래픽을 자주 활용해 저항과 풍자의 메시지를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브랜드가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까닭에 대중문화의 관습과 규범을 뒤집고자하는 여가수들이 즐겨 입기도 한다. 가수 리한나가 본인 뮤직비디오에서 이 브랜드의 오버사이즈 디자인을 입고 출연한 적이 있으며, 독특하고 젠더리스한 패션을 즐기는 가수 빌리 아일리시도 뮤직비디오와 패션 매거진 화보에서 이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카리나가 입은 이 재킷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가격은 70만~90만원대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28일 오전 기준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부분의 사이즈가 ‘품절 임박’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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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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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 [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은사는 지안 스님…서울 강남구 사)일붕정법 보존위 연실원서 출가식속가(俗家) 아내 김수연 반야(般若) 보살, 합장하며 법기 스님 곁 지켜 원로 배우 김희라(78· 金熙羅, 본명 김영목金永穆)가 영욕으로 점철된 속세를 뒤로하고 불교에 귀의, 법기(法氣) 스님으로 출가했다. 강력한 눈빛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70년대 한국 은막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김희라는 23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광평로에 있는 (사)일붕정법보존위워뇌 위원장 지안 스님(일붕 서경보 법맥전수자)을 은사로 불교에 귀의했다. 정법회 연실원 금강계단(관불사)에서 아내 김수현과 아들 금성 등 속세의 가족과 100여명의 불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식으로 출가, 법기(法氣)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기 스님은 일찍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어 지내던 중 친구이자 50여년 인생의 벗이었던 지안 큰 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결심하고 불교에 귀의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불교에 귀의하여 남은 여생을 부처님 일에 수행정진하며, 속세에서 연기생활을 했을 때 응원을 보내 준 팬들과 중생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배우 김희라는 1950~1960년대 흑백 영화시대에 ‘국민 아버지’로 불렀던 배우 故 김승호(1917~1968) 선생의 외아들로, 부친 장례식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의 궈유로 연기자 제안을 받은 후 이듬해 1969년 ‘비내리는 고모령’으로 영화에 데뷔, 1970년 ‘동춘’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발점으로 인기 배우 반열에 오르면서, 500여 편의 영화에 주역으로 출연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파나마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름다운 선배영화인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1972년 TBC 특집드라마 ‘벙어리 삼룡이’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1980년 MBC 주간드라마 ‘전원일기’, 1982년 KBS1 100분 드라마 ‘반역자’ 1983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 왕조 오백년-추동궁 마마’에서 1997년 MBC 일일시트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홍경인의 아버지 홍희라 역을 맡기까지 TV 드라마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정치인 김희라’가 되고 싶었던 그는 1996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을 맡아 정계에 뛰어들었지만,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민주연합 후보 출마하였으나 낙선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희라는 2000년 7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때 미국에서 자녀들과 생활하던 아내 김수연 씨가 급거 귀국하여 병상을 지키고 정성을 다해 간병을 한 끝에 언어 장애와 휠체어에 의지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홀로 걷기에 이르렀다. 김희라는 불편한 몸으로 2010년 고 윤정희가 미자역으로 연기한 영화 ‘시(詩)’에서 간병을 받는 강 노인 역으로 ‘제47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때 그는 "제가 아직 살아있네요. 세월이 가도 어떻게 합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분의 가슴속에 계속 살아남겠다"라는 수상 소감으로 시상식장을 메운 관객의 응원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의 아내 김수연 씨는 2005년 전북과학대학 초빙교수, 2006년 동아방송대학 초빙교수로 강의 및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김희라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다. 법명이 반야(般若)인 속가의 아내 김수연 씨는 남편의 불교 귀의에 대해서 “집안이 불교 가보를 이어온지라 모든 게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독서량도 많은 분인데,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셨을 때부터 불교 관련 서적을 탐독하셨다. 그러던 중 오랜 교제를 이어오던 지안 스님의 권유로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이라며 “이제 배우 김희라를 뒤로하고 법기(法氣) 스님으로 불교에 귀의하셨으니, 중생을 위한 기도와 포교에 정진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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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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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 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국민 배우’ 안성기(75)의 별세 소식에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후배 정우성과 이정재가 빈소를 지키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 고(故) 안성기는 5일 오전 9시쯤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상주에는 아내 오소영씨와 두 아들이 이름을 올렸다. 정우성과 이정재는 상주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유족과 함께 조문객을 맞이했다. 검은 정장 차림에 근조 리본을 단 두 사람은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순간도 곁에서 지켜봤다. 두 사람은 고인과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에서 가족처럼 함께해왔다. 9일 발인 때는 운구를 맡을 예정이다. 이날 빈소에는 고인과 60여 년 지기인 가왕 조용필을 비롯해 강우석·이준익 감독, 배우 이덕화·박중훈·권상우·최수종·신현준·송승헌,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소설가 김홍신, 가수 태진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배우 전도연과 김상경 등은 조화를 보내 고인을 기렸다. 고인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한 박중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40년 동안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고 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배우로서 그런 인격자분과 함께 있으면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며 “선배님이 영화계에 끼친 영향 또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주신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인과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스타’(2006) 등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가수 태진아는 아들인 가수 이루의 곡 ‘까만 안경’ 뮤직비디오에 고인이 출연했던 것을 언급하며 “저에게는 친형이나 다름없었는데 돌아가셨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고인의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5일장으로 결정됐다.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가 주관해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일반 시민을 위한 조문 공간도 서울영화센터에 마련된다. 6~8일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이며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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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성기 빈소서 정우성·이정재, 상주처럼 조문객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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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 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성실하게 연기했다. 끝의 끝까지도. 한국전쟁 상흔이 남은 땅에 배우란 직업을 알렸고, 무심히 쇼츠를 넘기는 시대에 ‘예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무대 위로 꺼냈다. 연극, 드라마, 영화. 매체도 가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종횡무진(縱橫無盡). 지난해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중문화예술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특별 연극을 선보인 그는 “예술이란 영원히 미완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완성을 향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고 정의하던 ‘최고령 현역 배우’ 이순재가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91세. 데뷔 69년만이다. 25일 소속사 에스지웨이엔터테인먼트는 이순재가 이날 새벽 별세했다고 밝혔다. 90세 받은 상에도 눈물 흘렸다 고인은 지난 1월 드라마 ‘개소리’(2024)로 KBS 연기대상을 받으며 현역 배우의 면모를 자랑했다. 2007년 MBC 연예대상 이후 받는 첫 연기대상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그는 “60세가 되어도 잘하면 공로상이 아니라 상을 주는 것”이라며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위해 힘써준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공을 돌리기도 했다. 이순재가 연기를 시작한 1956년은 배우라는 직업이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던 시절 올린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1961년 KBS 개국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진입한 그는 TBC 공채 1기로 발탁되며 TBC 전속 연기자 활동을 시작했고, 1966년 영화 ‘초연’으로 스크린에 나선다. 69년에 걸친 그의 활동기록은 곧 한국 대중문화예술사가 됐다. 꿈 많은 고등학생에서 ‘종횡무진’ 배우까지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에서 지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라 대전에 정착했다. 호적상으로는 1935년생이다. 대전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연극 ‘햄릿’ 무대에 오르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키웠고, 대학 재학 중엔 연극반을 재건해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동인제 극단 ‘실험극장’을 창단하며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무대를 기반으로 활동해오던 이순재는 1964년 TBC 창립 멤버로 합류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 일일연속극 ‘눈이 나리는데’(1964)를 시작으로, 최초의 TV 수사극 ‘형사수첩’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 입지를 다졌다. 고대하던 영화 출연의 기회도 생겼다. 1966년 정진우 감독의 ‘초연’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고, 1976년에는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최인현 감독의 영화 ‘집념’으로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연기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1980년 11월, 전두환 정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로 그가 몸담았던 TBC가 문을 닫았다. 이후 그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활동 무대를 KBS, MBC로 넓혀갔다. 대중 앞에 한 발 더 1980년대 후반에는 ‘이순재 의원’으로 대중 앞에 섰다. 문화계 인사들의 정계 진출이 이어지던 시기, 고인은 동료 배우 이낙훈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서울 중랑구 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방송국에 저작인접권이 일임되어 있던 저작권법을 수정, 실연자인 배우의 저작인접권을 제도화하는 등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는 임기를 마친 후 ‘의원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연기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교장 선생님 박봉학 역을 맡은 MBC 일일연속극 ‘보고 또 보고’(1998~1999)와 허준의 스승 유의태 역을 연기한 MBC 사극 드라마 ‘허준’은 각각 일일연속극(57.3%)과 사극 드라마(64.8%)의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그런 그에게 ‘야동순재’라는 격 없는 별명까지 붙은 건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에게 큰소리를 치지만 밖에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허당 할아버지 이순재를 연기했다. 몸을 사리지 않은 그의 연기는 최근까지도 각종 플랫폼을 통해 회자되며 대중에게 웃음을 안겼다. 담당의 “휴식해야” 말할 때까지 무대에 섰다 방송에서의 왕성한 활동도, 고인이 연극에 품은 애정을 이기진 못했다. 그는 ‘세일즈맨의 죽음’(2000, 2017), ‘늙은 부부의 이야기’(2005), ‘사랑별곡’(2013), ‘황금연못’(2015), ‘앙리 할아버지와 나’(2017) 등 꾸준히 연극활동을 이어갔다. 2022년엔 동시에 네 편의 연극을 소화했고, 그해 12월부턴 러시아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통해 조연(쏘린) 출연과 첫 상업 연극 연출을 병행했다. 2023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수작인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 연극의 주연을 맡은 그는 ‘최고령 리어왕’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지난해엔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의 에스터를 1달 정도 연기하다 담당의로부터 휴식을 권고받고 하차했다. 여력이 닿는 데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다.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달라” 연기를 향한 고인의 사랑은 후배들에게도 아낌없이 돌아갔다. 세종대에 이어 가천대에서 10년 이상 영화예술학과 교수로 일하며 연기를 가르쳤다.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일침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열린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꾸린 특별무대를 통해 연극 무대 오디션에 접수한 참가자가 되어 자신의 연기철학을 전했다. “배우로서 연기는 생명력”이라며 “연기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렸다”고 말한 그는 특별무대에서 누구냐 묻자 출연한 드라마·영화·연극의 개수를 통해 자신을 소개했다. 이순재의 출연작은 모든 매체를 합해 약 400여편에 달한다. 당시 그는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열심히 한 배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연극 ‘리어왕’의 한 장면을 연기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무대 위, 카메라 앞에 남아있었던 셈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0호실, 발인은 오는 27일 오전 6시20분이다. 장지는 이천 에던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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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최고령 리어왕', 90세 연기대상…'천생 배우' 이순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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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 [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오스카상 수상 감독이자 자유주의 운동가,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의 이름으로 독립 영화의 대부로 활약했던 할리우드의 황금기 로버트 레드포드가 16일(현지시각 화요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홍보 담당자 신디 버거는 성명을 통해 레드포드가 "유타주 산골에 있는 선댄스 극장의 자택에서,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60년대에 스타덤에 오른 레드포드는 "The Candidate캔디데이트", "All the President’s Men대통령의 모든 사람들", "The Way We Were우리가 있었던 길" 등의 영화로 70년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영화 "Ordinary People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70년대를 마무리했고, 이 영화는 1980년 작품상을 수상했다. 물결치는 금발 머리와 소년 같은 미소는 그를 가장 선망하는 주연 배우로 만들었지만, 그는 정치적 옹호, 화려하지 않은 역할에 대한 의욕, 저예산 영화에 플랫폼을 제공하려는 헌신 등을 통해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부터 "Jeremiah Johnson 제레미아 존슨"의 산악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중 스파이까지 다양한 배역을 맡았으며, 제인 폰다, 메릴 스트립, 톰 크루즈 등이 그의 파트너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스크린 파트너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 운동가이자 장난꾸러기였던 폴 뉴먼이었고, 두 사람의 영화는 스크린 밖에서도 따뜻하고 장난기 어린 관계를 보여주는 변주였다. 레드포드는 1969년작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에서 뉴먼의 상대역으로 교활한 무법자를 연기했는데,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여 레드포드의 선댄스 연구소와 영화제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는 또한 1973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The Sting 스팅"에서 뉴먼과 함께 호흡을 맞춰 1930년대 시카고의 젊은 사기꾼 역을 맡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레드포드가 감독과 제작에 집중하면서 1970년대 이후 영화 출연은 점차 줄어들었고, 선댄스 연구소를 통해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독립 영화 운동의 거장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1985년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Out of Africa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2013년에는 "All is Lost 올 이즈 로스트"에서 난파선 선원 역을 맡아 영화 속 유일한 배우로 출연하며 그의 연기 인생 중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년에는 작별 영화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The Old Man and the Gun노인과 총"에서도 다시 한번 찬사를 받았다. 그는 영화 개봉 직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제가 매우 만족하는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고 생각합니다. 21살 때부터 시작해서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요. 이제 80대가 되어가니 은퇴를 생각하고 아내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가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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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오스카상 수상 배우·감독, 인디 영화의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 89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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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 "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서울대 출신 배우 김혜은이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의 아내 설난영씨를 응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김혜은은 31일 인스타그램에 “어제오늘처럼 서울대 나온 학력이 부끄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제가 대신 죄송하단 말씀 전하고 싶다”며 글을 올렸다. 그는 “인간의 학력과 지성은 고단한 인생의 성실함으로 삶의 증거로 말하는 분들 앞에서 한 장의 습자지와도 같은 아무것도 아닌 가치 없는 자랑”이라며 “누구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하하는 혀를 가진 자라면 그는 가장 부끄러운 혀를 가진 자”라고 했다. 이어 “여자로서 한 남자의 꿈을 위해 평생을 뒷바라지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그러면서 여성 노동운동가로 공의를 위해 몸을 던지려 노력하며 살아오신 설난영 여사와 같은 우리 어머니들을 저는 존경한다. 저는 그리 살지 못했을 것 같아 더 존경한다”고 했다. 또 그는 “남편 위해, 자식 위해 생계를 도맡으며 법카 사고 한번 없이 남편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오신 설난영 여사님”이라며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진짜 롤모델”이라고 했다. 끝으로 김혜은은 “고학력자 아니고, 서울대 나왔다며 고졸 비하하는 교만하고 계급의식 절어 사는 썩은 지성인 아니다”라며 “이 시대를 사는 여성으로서 저렴한 모진 말에 정말 가슴 아픈 오늘”이라고 했다. 다만 이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김혜은의 이 글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여성·노동자·학력 비하 논란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혜은은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다. 앞서 유 전 이사장은 지난 28일 공개된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난영씨 인생에선 거의 갈 수 없는 자리”라며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문수씨는 설난영씨가 생각하기에 나하고는 균형이 안 맞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면서 “그런 남자와의 혼인을 통해 내가 좀 더 고양됐다고 느낄 수 있다. 험하게 살다가 국회의원 사모님이 됐죠. 남편을 더욱 우러러보겠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발언을 두고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지자 유 전 이사장은 “표현이 거칠었던 건 제 잘못”이라며 “좀 더 점잖고 정확한 표현을 썼더라면 비난을 그렇게 많이 받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김문수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아내에 대한 글을 올려 “위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저와 가족을 지킨 훌륭한 사람”이라며 “인생에서 갈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고 갈 수 없는 자리가 따로 있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김 후보는 이날 유세에 ‘제 아내가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가 하면, 유 전 이사장을 겨냥한 듯 “어떤 사람이 하는 소리가, 제 아내가 대학 안 나왔다고 (뭐라고 한다)”며 “사람의 지혜는 꼭 학벌 높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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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력 부끄러운 적 처음"…배우 김혜은이 삭제한 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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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 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걸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25)가 소셜미디어에 ‘빨간 2번 점퍼’ 사진을 올렸다가 삭제한 배경을 두고 정치적 메시지와 연관이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리나는 지난 27일 인스타그램에 꽃 이모티콘과 함께 일본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카리나가 입고 있는 점퍼엔 빨간 줄이 그려져있고, 빨간색의 숫자 2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선 카리나가 이번 대선에서 특정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일각에선 과거 이재명 더불어대선민주당 후보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온라인에 카리나에 대해 “한번만 먹고 싶다 진짜” 등 성희롱성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나왔던 것을 거론하며 이 때문에 카리나가 정치색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카리나는 약 2시간 만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카리나가 입은 점퍼는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창업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바케라(Vaquera)의 제품이다. ‘Vaquera’는 스페인어로 여성 카우보이를 뜻하며, 반항적이고 독립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브랜드로 평판이 높다. 성별과 인종, 젠더, 계급 등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해체주의적 철학을 디자인에 담아내며, 이를 위해 지나치게 부풀린 사이즈의 셔츠처럼 의도된 비대칭 디자인이나 숫자 그래픽을 자주 활용해 저항과 풍자의 메시지를 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브랜드가 젠더의 경계를 허물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까닭에 대중문화의 관습과 규범을 뒤집고자하는 여가수들이 즐겨 입기도 한다. 가수 리한나가 본인 뮤직비디오에서 이 브랜드의 오버사이즈 디자인을 입고 출연한 적이 있으며, 독특하고 젠더리스한 패션을 즐기는 가수 빌리 아일리시도 뮤직비디오와 패션 매거진 화보에서 이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카리나가 입은 이 재킷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가격은 70만~90만원대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28일 오전 기준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부분의 사이즈가 ‘품절 임박’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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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나 '빨간 2번 점퍼' 브랜드 뭐길래…온라인서 품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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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 [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은사는 지안 스님…서울 강남구 사)일붕정법 보존위 연실원서 출가식속가(俗家) 아내 김수연 반야(般若) 보살, 합장하며 법기 스님 곁 지켜 원로 배우 김희라(78· 金熙羅, 본명 김영목金永穆)가 영욕으로 점철된 속세를 뒤로하고 불교에 귀의, 법기(法氣) 스님으로 출가했다. 강력한 눈빛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70년대 한국 은막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김희라는 23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광평로에 있는 (사)일붕정법보존위워뇌 위원장 지안 스님(일붕 서경보 법맥전수자)을 은사로 불교에 귀의했다. 정법회 연실원 금강계단(관불사)에서 아내 김수현과 아들 금성 등 속세의 가족과 100여명의 불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식으로 출가, 법기(法氣)라는 법명을 받았다. 법기 스님은 일찍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어 지내던 중 친구이자 50여년 인생의 벗이었던 지안 큰 스님을 은사로 출가를 결심하고 불교에 귀의하면서 “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불교에 귀의하여 남은 여생을 부처님 일에 수행정진하며, 속세에서 연기생활을 했을 때 응원을 보내 준 팬들과 중생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배우 김희라는 1950~1960년대 흑백 영화시대에 ‘국민 아버지’로 불렀던 배우 故 김승호(1917~1968) 선생의 외아들로, 부친 장례식에 참석한 임권택 감독의 궈유로 연기자 제안을 받은 후 이듬해 1969년 ‘비내리는 고모령’으로 영화에 데뷔, 1970년 ‘동춘’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발점으로 인기 배우 반열에 오르면서, 500여 편의 영화에 주역으로 출연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애독자인기상,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파나마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름다운 선배영화인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1972년 TBC 특집드라마 ‘벙어리 삼룡이’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1980년 MBC 주간드라마 ‘전원일기’, 1982년 KBS1 100분 드라마 ‘반역자’ 1983년 MBC 대하드라마 ‘조선 왕조 오백년-추동궁 마마’에서 1997년 MBC 일일시트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홍경인의 아버지 홍희라 역을 맡기까지 TV 드라마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정치인 김희라’가 되고 싶었던 그는 1996년 자유민주연합 문화예술행정특임위원을 맡아 정계에 뛰어들었지만,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민주연합 후보 출마하였으나 낙선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희라는 2000년 7월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때 미국에서 자녀들과 생활하던 아내 김수연 씨가 급거 귀국하여 병상을 지키고 정성을 다해 간병을 한 끝에 언어 장애와 휠체어에 의지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홀로 걷기에 이르렀다. 김희라는 불편한 몸으로 2010년 고 윤정희가 미자역으로 연기한 영화 ‘시(詩)’에서 간병을 받는 강 노인 역으로 ‘제47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때 그는 "제가 아직 살아있네요. 세월이 가도 어떻게 합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모든 분의 가슴속에 계속 살아남겠다"라는 수상 소감으로 시상식장을 메운 관객의 응원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의 아내 김수연 씨는 2005년 전북과학대학 초빙교수, 2006년 동아방송대학 초빙교수로 강의 및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는 김희라의 손발이 되어주고 있다. 법명이 반야(般若)인 속가의 아내 김수연 씨는 남편의 불교 귀의에 대해서 “집안이 불교 가보를 이어온지라 모든 게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독서량도 많은 분인데,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셨을 때부터 불교 관련 서적을 탐독하셨다. 그러던 중 오랜 교제를 이어오던 지안 스님의 권유로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이라며 “이제 배우 김희라를 뒤로하고 법기(法氣) 스님으로 불교에 귀의하셨으니, 중생을 위한 기도와 포교에 정진하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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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속보] “원로 배우 김희라 출가, 스님 되다…법명은 법기(法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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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가 아니라 흑설공주? 개봉 전 논란 휩싸인 디즈니 결국
- 백설공주가 아니라 흑설공주? 개봉 전 논란 휩싸인 디즈니 결국 개봉을 앞둔 디즈니 실사 영화 '백설공주'가 무리한 각색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의식해 영국 런던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던 시사회를 취소했다. 6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 등에 따르면, 디즈니 측은 오는 21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런던에서 프리미어 시사회와 레드카펫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취소했다. 한 소식통은 "디즈니 측은 백설공주에 대한 반발을 예상해 엄격하게 통제된 소수의 언론 행사만 진행하기로 했다"며 "이것이 런던 프리미어 시사회를 진행하지 않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를 취한 이유"라고 데일리메일에 전했다. 이어 "레이첼 지글러가 언론으로부터 받는 질문의 양도 최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약 4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 이 영화는 원작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현대적인 시선으로 각색해 제목에서 '일곱 난쟁이'를 빼고, 백설공주의 주체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설공주 역은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맡았는데, 콜롬비아와 폴란드 혼혈인 지글러가 백설공주 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중들은 지글러의 피부색이 눈처럼 하얀 피부를 의미하는 '백설(Snow White)'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일부는 그를 '흑설공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글러가 2022년 한 인터뷰에서 "백설공주 원작 영화는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발언한 것도 팬들의 분노를 샀다. 그는 극 중 왕자에 대해서도 "백설공주를 스토킹하는 남자"라며 "이상하다"고 표현했다. 아울러 여왕 역에 갤 가돗이 캐스팅된 데에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이 영화를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돗은 지난 수년간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왔다. 메트로는 "지난해 8월 첫 번째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일곱 난쟁이를 만드는 데 CGI(컴퓨터 생성 이미지)를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아 140만개 이상의 '싫어요'를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디즈니의 실사판 영화가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3년 개봉한 '인어공주'에서 주인공 에리얼도 원작에서 하얀 피부의 빨간 머리를 가졌으나 실사 영화에서 이미지가 다른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캐스팅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결국 수억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인어공주는 흥행에 실패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한편 백설공주는 국내에서 오는 19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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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가 아니라 흑설공주? 개봉 전 논란 휩싸인 디즈니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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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오스카 2025’ 레드카펫 패션 하이라이트
- [Fashion] ‘오스카 2025’ 레드카펫 패션 하이라이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김정태 기자)-레드카펫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한 공로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로 구성된 '위키드' 듀오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볼륨감 넘치는 화려한 패션을 선보이며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리보는 거대한 짙은 녹색 벨벳 루이비통 드레스를 입고 엘파바 캐릭터를 우주로 쏘아 올리거나 적어도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스탠드업 포인트 칼라로 표현했다.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그란데는 좋은 마녀 글린다가 디자인한 램프쉐이드에 끈이 없는 옅은 분홍색 램프셰이드를 착용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스카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패션 퍼레이드는 매우 즐거웠다. 특히 올해는 가장 두드러진 반짝임을 좋아한다면 더욱 그렇다.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데미 무어는 반짝이는 은색 아르마니 프리베를 입고 수상을 위해 차려입은 것 같았다(이 드레스는 금빛 오스카상을 아주 멋지게 돋보이게 장식했을 것이다). 또한 완벽하게 어울리는 핑크색 랄프 로렌을 입은 셀레나 고메즈('에밀리아 페레즈'), 은색 잎사귀에 멋지게 싸인 것처럼 보이는 홀터 드레스를 입은 민디 칼링, 작년 여우주연상 수상자 엠마 스톤도 세련된 은색 스팽글을 입은 모습이 우아하게 반영되었다. 좀 더 화려한 것을 선호한다면, 조이 살다냐의 생로랑 드레스는 사랑스러운 부르고뉴색이었고 버블 스커트 3종과 팔꿈치 길이의 얇은 검은색 장갑을 착용했다. 많은 사람이 따라할 수 없는 스타일이지만, 그녀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 아드리아나 파즈("에밀리아 페레즈")와 마리사 보드("위키드")는 생생한 빨간색을 입었습니다.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 티모시 샬라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나나 옐로우로 차려입었고, 이사벨라 로셀리니(여우조연상 후보 "콘클레이브")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파란색 벨벳 드레스를 입어 과거 영화 역할 중 하나와 고인이 된 데이비드 린치에게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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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오스카 2025’ 레드카펫 패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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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장면] 오스카 시상식, 강렬한 대사 전하는 응급 구조대원들에게 경의 표해
- [화제의 장면] 오스카 시상식, 강렬한 대사 전하는 응급 구조대원들에게 경의 표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김정태 기자)-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2일 오후(현지시간) 개최된 ‘제97회 오스카 시상식’은 “왜 미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나라”인지에 대한 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축제였다. 오스카 시상식은 할리우드 최고의 작품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시상식은 최근 파괴적인 로스앤젤레스 산불과 싸운 응급 구조대원과 소방관들에게 특별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잠시 중단되었다. 로스앤젤레스 소방서의 몇몇 직원들은 시상식 도중에 무대에 올랐을 때 스타들로 가득 찬 관중들로부터 열렬한 기립 박수를 받았다. 진행자 코난 오브라이언은 응급 구조대원들에게 “로스앤젤레스 전체를 대표하여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오브라이언은 “제가 감히 용기도 나지 않는 농담이 몇 가지 있다”고 언급하며 구조대원들이 바비큐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섰다. 그는 “그리고 관객 모두가 웃어야 한다”고 요구한 후 “이들은 영웅이다!”라고 말했다. 이때 야유가 시작되었다. LAFD의 에릭 스콧 대위는 “우리는 집을 잃은 모든 분들께 진심을 전한다”라며 “그리고 저는 '조커 2'의 프로듀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브라이언이 스콧 대위를 칭찬한 후("젠장, 오늘 밤 최고의 전달!"), LAFD 조종사 조니스 존슨은 “티모시 샬라메는 밥 딜런을 연기하기 위해 노래하는 법을 배웠다. 사실, 그의 노래 실력이 너무 좋아서 거의 그 배역을 놓칠 뻔했다”라고 말했다. 패서디나 소방서의 조디 슬라이커 대위는 “코난과 함께 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보통 코난이 전화하면 나무에 갇혀 있다”라고 말했다. 관객이 웃자 오브라이언은 “(그는) 두 번이나 일어났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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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장면] 오스카 시상식, 강렬한 대사 전하는 응급 구조대원들에게 경의 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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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2025 오스카: 아노라(Anora), 5개 부문 석권
- <속보> 2025 오스카: 아노라(Anora), 5개 부문 석권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영화 편집상 할리우드, 로스앤젤레스(김정태 기자)-일요일 밤(현지시간 2일) 돌비극장에서 개최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큰 수상자는 누구일까? 러시아 재벌의 아들과 결혼하는 성 노동자에 관한 숀 베이커의 거친 신데렐라 이야기 '아노라(Anora)'였다.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영화 편집상 등 오스카상 5개 부문을 수상했다. 가장 큰 패배자는 누구일까? 마지막 두 개의 시상식 직전에 설명할 수 없이 생방송을 중단한 훌루(Hulu)는 수많은 가정에서 좌절의 비명을 질렀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주최한 이번 오스카 시상식은 메이플 밸리에 거주하는 브랜디 칼릴(최우수 노래 후보)과 브레머튼에 거주하는 영화감독 줄리안 브레이브 노이즈캣(최우수 다큐멘터리 장편)이 모두 자리를 지키고, 다른 작품들이 수상하는 등 현지 관객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대부분 편안하고 유쾌한 행사였다. 그리고 베이커에게는 바쁜 한 해였다. 그는 한 영화(편집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 작품상)로 4개의 오스카상을 수상한 최초의 인물로 역사를 썼다. 단돈 600만 달러로 제작된 독립 영화의 수상을 축하하며, 베이커는 최우수 감독상 연설에서 청중에게 영화관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세상이 매우 분열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 시대에 영화 관람의 공동체적 경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남우주연상은 베테랑과 신인에게 돌아갔다. 22년 전 오스카 남우주연상('피아니스트'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드리안 브로디는 '더 브루탈리스트'로 수상하며 그 사이 얻은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기는 매우 연약한 직업입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매우 화려하고 어떤 순간에는 그렇게 보이지만 ... 경력의 어느 곳에 있든 무엇을 성취했든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밤을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것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그를 멀리하기 시작한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를 효과적으로 폐쇄했다. "이것은 내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데미 무어의 경력을 결정짓는 역할인 "더 서티리얼"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25세의 마이키 매디슨은 "아노라" 물결을 타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녀는 연설에서 성 노동자 커뮤니티를 인정하며 "앞으로도 지지하고 동맹이 되겠다“며 "동료 후보들의 사려 깊고, 지적이며, 아름답고, 숨막히는 노력"을 인정하며 "이것은 꿈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조연상 수상자들은 대조적인 연구였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정말 주연이었다는 점이다. "에밀리아 페레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조 살다냐는 시상대에서 자신을 "이민 부모의 자랑스러운 자녀"라고 밝히며 도미니카 출신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고 언급하며 감격스러워했다. 남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외친 그녀(정확한)의 연설이었다 "진짜 고통"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키어런 컬킨은 영화에서 자신의 냉소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몇 개의 f-폭탄을 날리고 우승 후 아내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동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아마 오스카라는 아들이 있을까?) 시상식이 많은 밤이었다. "위키드"는 주요 부문에서 제외되었지만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했다. 후자는 퍼시픽 노스웨스트 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위한 최근의 매혹적인 디자인으로 시애틀 시민들에게 알려진 폴 태즈웰이 수상했으며, 폴 태즈웰은 시상대에서 흑인 최초로 이 부문을 수상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했다. "더 브루탈리스트"는 촬영과 악보 부문에서 수상했고, "듄: 파트 투"는 음향 및 시각 효과의 기술 부문을 휩쓸었으며, "에밀리아 페레즈"는 살다냐의 수상 외에도 "엘 말"의 최우수 곡을, "콘클라베"는 각색된 각본 부문에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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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2025 오스카: 아노라(Anora), 5개 부문 석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