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이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는 왜 외로운가…한국식 집단주의의 상징
'카톡 피로' '카톡 감옥' 등 반강제적 공간처럼 존재
단톡방이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는 왜 외로운가…한국식 집단주의의 상징
'카톡 피로' '카톡 감옥' 등 반강제적 공간처럼 존재
벗어날 수 없는 단톡방서 정치·건강 등 '갑질'도…잘 쓰면 약, 못 쓰면 독
새해 인사를 열심히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 설날을 얼마 앞두고 또다시 신년 하례로 바쁘다. 양력과 음력이 병존하는 중화권 유교 문화의 현실에서 이 자체를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매년 두어 달씩이나 입에 달고 사는 우리의 경우는 유별난 측면이 있다. 예전처럼 연하장을 돌리는 것도 아니고 세배하러 다니는 것도 아닌데 신년 인사가 오히려 늘어나는 느낌은 카카오톡, 곧 카톡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바일 메신저 가운데 하나인 카톡은 4800만명 이상이 실제로 사용 중인 ‘국민 앱’이다. 거의 모든 성인이 카톡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상대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손끝 하나로 새해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부나 지자체의 행정 서비스가 카톡을 이용할 때도 적지 않다. 민간 사업이 공공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카톡 일극(一極) 체제’는 단체 채팅 공간, 속칭 단톡방에서 가장 위력적이다. 카톡 사용자의 90%가 한 개 이상의 단톡방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그것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방증한다. 업무를 처리하거나 모임을 관리할 때, 혹은 친목을 나눌 때 옛날에는 이것 없이 어떻게 살았나 싶은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외국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일본의 ‘LINE’과 중국의 ‘웨이신(微信)’이 단체 채팅방을 갖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WhatsApp과 Snapchat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결코 우리나라 단톡방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단톡방은 한국식 집단주의의 상징적 공간이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모바일 단체 대화방의 공적 기능과 사적 용도가 엄격히 분리된다. 개인 간 소통은 개별 채팅이 원칙이다. 일본에서도 그것이 사회관계의 기본 단위가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민폐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많아 단체방의 규모가 우리보다 훨씬 큰 편인 중국에서도 주된 용도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요긴한 업무 처리다. 국가의 감시 및 검열 가능성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단톡방은 ‘소왕국’ 분위기다.
우선 단톡방 내부의 집단 규범(group rule)이 강하다. 지연·혈연·학연 등 전통적 연줄망의 디지털 버전이든, 학교·직장·단체 등 기존 오프라인 조직의 온라인 연장이든, 단톡방은 관계를 유지하는 반강제적 공간처럼 존재할 때가 많다. 그곳은 게시와 반응, 침묵 행위에 관련하여 암묵적 규칙을 공유한다. 어떤 시점에서 어떤 수위로 어떤 메시지를 낼지에 대해 모종의 불문율이 작동할 뿐 아니라 참여 활동량에 있어서도 과잉과 과소 사이의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알림’ 기능이 거의 상례화되어 있거나 ‘읽음’ 표시가 모임에 대한 충성도 평가 장치로 곧잘 활용되는 것도 우리나라 단톡방의 특징이다. 그래서 ‘카톡 피로’나 ‘카톡 감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톡방에서 쉽게 벗어날 수도 없다. 조용히 나가기도 어렵지만 그 세계 나름의 ‘소외 불안(FOMO·Fear Of Missing Out)’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웬만한 용기 없이는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주장하기 힘들다. 더욱이 우리나라 단톡방은 전근대적 위계와 서열이 상당 부분 전이된 미시 권력장(權力場)이다. 바로 이런 지점을 파고드는 것이 ‘카톡 폭탄’이나 ‘카톡 공습’이다. 신앙이나 정치, 건강 등을 주제로 한 선의의 ‘메시지 갑질’ 말이다.
단톡방에서의 무성한 대화가 관계의 질을 보증하지도 않는다. 카톡상의 ‘친구’는 ‘연결된 사람’일 뿐 ‘진짜’ 친구는 아니다. 단문(短文) 위주의 핑퐁식 말 섞기라 정서적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 감정의 ‘대리 수행’ 장치, 곧 이모티콘에는 아무래도 진정성이 떨어진다. 소위 ‘톡질’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관계 허기가 늘어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대면·구어(口語) 소통 능력의 저하 문제도 심각하다. 말을 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며, 말하기를 두려워하기조차 하는 것이 소셜 미디어 세대의 전반적 풍조다.
국가데이터처는 2025년에 실시한 사회조사에서 ‘외로움’을 묻는 문항을 처음 포함했다. 결과는 13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 ‘평소 외롭다’고 대답한 사람 비율이 38.2%로 나타났다. 바로 이것이 2010년대 이후 단톡방의 급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민낯이다. 그 무렵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가까운 관계망의 측정 지표 가운데 하나로 카톡 친구나 가입 단톡방 숫자를 언급한 적이 있다. 혹시 그때 내 제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정정하고 싶다.-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조선일보. 입력 2026.02.01. 23: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