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0-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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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은 퇴학을 당하고, 교수들은 실직을 하면서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지만 당시 기독교한국장로회는 신학교과정을 운영하기로 총회에서 결의하고, 현재 서대문에 소재한 총회교육원(원장 이현준 목사, 당시 선교교육원)에서 퇴학당하고, 실직당한 사람들을 보듬어 배움과 가르침을 이어나가도록 했던 역사가 수록된 증언집 '서대문민중신학교의 증언'이 최근 출간되어 지난 12월 3일에는 북콘서트를 개최했다. 주최측 및 참석자들은 암울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서대문민중신학교로 인해 희망을 얻었던 점을 감사하고, 앞으로 교회와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를 값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북콘서트는 출판비를 지원한 서울특별시(시장 박원순)의 후원, 당시 총회선교교육원 원장을 지낸 서남동 목사를 기념하는 '죽재 서남동목사 기념사업회'의 주최로  진행되었다.
서광선 박사(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논평을 담당키로 했지만 건강문제로 참석하지 못했고, 권진관 박사(동문회 회장)가 대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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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관 동문회장은 앞으로도 사회에 보탬이 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그 첫걸음으로서 증언집이 출간되었다고 설명했다.

권진관 박사(전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서광선 박사와의 대화 내용을 전했는데 서대문민중신학교의 출발시에 신학교와 인근에는 서대문교도소가 있었다는 점에서 깊은 느낌이 있어 울기도 했다면서 선교교육원 서대문민중신학교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학교였고, 때마침 신학교에는 기성교육기관에서 쫒아낸 유능한 교수와 학생들로 채워져 수준높은 강의가 이어졌다는 회고를 했다고 전했다. 또한 고통당하는 이들을 흔쾌히 받아주고, 여기서 이뤄진 수업에 참여할 때는 매우 감동적인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서광선 박사는 당시에는 하나님의 뜻인지 잘 모르고 온 사람들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행된 좋은 기회였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서대문민중신학교에서 길러진 인재들은 민중교회와 민중신학, 민중역사학, 민중사회학, 민중문화, 민중교육학 등을 현재의 사회에 태동하게 한 섭리에 영향받은 인물들이었고, 결과적으로 신학이 인간과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며, 깊은 관계임을 하나님께서는 알게하는 계기였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전했다. 서광선 박사는 과거로부터 진주를 캐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역사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될 고 말 것입니다.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만이 역사로부터 진주를 캘 수 있다는 제언을 했다고 권 박사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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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승철 목사는 토크콘서트를 통해 과거 역사를 짚어보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음을 설명했다.

임승철 목사의 사회로 콘서트가 진행되었으며, 임 목사는 올해에는 서대문민중신학교 증언집이 책으로 출간했으나 이후에는 영상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KBS이사장 김상근 목사는 유신선포에 대해 저항했던 대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제적을 당하기도 하고, 민청학련사건으로 인해 투옥된 학생들도 어려움을 당하던 시기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선교교육원을 설립해 해직당한 교수들과 학생들이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설명과 이것은 세상과 교회를 바꿔나가는 성령의 걸음이고 쾨거였다며 머릿말을 통해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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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총회교육원장이 인사말을 담당했다.

이현준 목사(기장 총회교육원장)은 서대문민중신학교의 활약은 오늘의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있다면서 한국그리스도가 더욱 많은 기여를 하기 바라며, 이제 시작일 뿐이기에 더 열정적으로 새시대의 발전을 이끌어가자고 밝혔다.
정진우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부회장)는 기장 선교교육원에 모였던 사람들은 한국민주화운동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고, 명칭으로는 기장이었지만 한 교단이나 기독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복음이 지향하는 '오이쿠메네(주님께 속한 전세계)'로서 하나님의 정의를 세상 속에서 실현하려는 열정이 지금의 민주화된 대한민국이라는 열매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감사와 축하를 밝혔다.
권진관 박사(선교교육원동문회장)은 민청학련으로 출소 후 1976년 공장에서 현장을 경험하던 중 서대문민중신학교의 소문을 듣고 홀로 찾아갔던 곳은 학교로는 돌아갈 수 없었고, 학우를 만나도 겸언쩍었던 젊은 청년이었다면서 민중신학교의 선배와 동료들의 권유로 같이 앉아 오랜만에 수업을 들었던 벅찬 추억을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신학의 영억을 넘어 통합적인 배움을 베풀던 세계의 유례없는 좋은 교육기관이었다면서 당시 교육원은 하나님의 역사와 은총이었다고 밝혔다. 권 박사는 서대문민중신학교는 당대 어떤 대학보다도 교수진이 우월했고, 신학과 사회를 통괄하는 학문이 연구되던 곳이었는데 그 경제적 기반은 독일교회의 재정지원에 의존했기에 빛진 마음이 있다면서 앞으로는 우리들이 주체적으로 재정을 모아 좋은 일을 해야한다고 제시하고, 당시 민중신학은 정치로 인해 억압받은 사람들을 위한 방주였다면 현재 세상에서 억압받고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은 여전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출신자들이 기여할 것인가는 수일에 걸친 진중한 토론을 통해 설정되고, 봉사가 실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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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일 목사(편찬위원장)는 역사는 기록되고 전승되야하는게 그러기 위해서는 자료의 수집과 정리가 필요하지만 최초에 편찬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자료가 매우 부족했음을 밝혔다. 서대문민중신학교가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큰 역할을 한 것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자료들이 정리되어 마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웟던 작업이고 편찬 초기에는 역사자료집을 내고, 차후에 책으로 엮으려는 소박한 생각이었지만 편집모임과 졸업생들의 증언원고를 수집해가면서 점차 풍성해져감에 따라 신학교 출신자들이 민중교회와 노동계, 농촌 등 현장에서의 생생한 정보가 모임에 따라 이처럼 책으로 출간하게되었다고 강조했다. 서울특별시(시장 박원순)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임승철 목사의 지원성사를 위한 노고가 큰 힘이 되었다면서 그간 노력한 역사편찬위원들과 이현준 원장, 김창규 목사, 박몽규 시인, 한기양 목사등에게 감사를 표했다. 임원단 권진관 회장, 정상시 조인영 신대균 제 부회장, 김명희 총무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이 목사는 서대문민중신학교는 최초에는 한신대를 못다니게 된 사람들을 받아줬지만 이후 교단에서는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퇴학된 타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줬고, 비인가신학교였지만 졸업생들을 기장에서는 동등하게 받아주고, 해외 대학으로 유학가는 경우 정식으로 유학생활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 교수직을 감당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회고했다.
김명희 총무는 한일장신대에 입학했었고, '80년에 휴학 후, '83년에 선교교육원(서대문민중신학교)에 입학했으며, 당시 학교를 못다니게 된 사람들에게 선교교육원에서 수업을 개설해준 것은 큰 위안이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이곳에 올 수 밖에 없었던 교수진과 학생들은 학문적인 능력치로는 대한민국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인사들이었기에 당시 수업의 수준이 높았고, 결국 졸업생들은 신학분야 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정착해 지금까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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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학 목사의 대금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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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몽구 시인의 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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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우 청년예술가의 팝핀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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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푸하 가수의 축하노래.

북콘서트는 김균열 감독이 제작한 동영상증언을 장시간 시청했고, 안재학 목사가 대금으로 '회룡포' 등의 곡을 연주했으며, 박몽구 시인은 자작 서시 '민들레 홀씨 봄을 배달하듯'을 낭독, 이건우 청년예술가는 '서남동 목사를 기리며', '바람의 빛깔'이라는 댄스를 보여주고, 황푸하 가수는 '혼자 살아가기에는 버거운 세상', 자작 찬송 '내 작은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를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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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묵 박사는 증언집이 출간됨으로서 선교교육원은 역사가 되었고, 인류의 유산이 될 자격을 얻었다고 평가했다.

최형묵 박사(한신대학교, 한국민중신학회 회장)는 '기장 선교교육원의 역사적 의의'라는 제목의 학술발제를 했다. 최 박사는 서대문민중신학교의 역할은 대단했지만 실체에 대해 자료는 부족했고, 당사자들의 증언만이 일부 있었던 것이 이번 기회에 증언집을 책으로 출간한 것은 "전설이 역사가 된 것"이며, 이 책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역사적 전모를 충분히 알 수 있게되었고, 역사기록이 됨으로서 그 의미가 보편화되어서 앞으로는 사람들의 공동유산이 될 자격을 얻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신체제가 소위 문제학생을 망치려들었지만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는 목회자의 뜻을 둔 학생들의 장래를 보장한 사건이며, 결과적으로 민중신학의 출발점이되었고, 민중교회의 원점이 되었으며, 신학이 민중사건의 현장으로 열린 통로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했는데 앞으로는 여기에서의 학풍이었던 자유로운 정신의 대안교육의 역할이 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선도했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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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보듬어주고, 극복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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